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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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12-02 12: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 건축과 기독교 건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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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고 스스로 강대하더라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더라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다니엘 8:4~8, 개역성경)

성경의 구약과 신약 사이에 성경 기록이 없는 대략 400년의 기간을 역사학자들은 ‘중간사(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부른다. 이 기간의 역사에서 핵심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ros III)’이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라고 널리 통용된다. 알렉산드로스(Ἀλeξανδροc)라는 이름의 뜻은 고대 그리스어로 ‘인간을 지키는 사람’ 또는 ‘인간의 수호자(Defender/ Protector of Men)’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등장은 성경에서도 나타나 있다.
본문 다니엘서 8장 5절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예언하신 것과 같이 ‘한 숫염소’와 유대 기준 서편은 헬라(마케도니아)를 가리키며, 염소의 두 눈 사이의 ‘현저한 뿔’은 알렉산드로스 3세를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알렉산드로스 3세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종교 건축이 세워지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필립포스 2세, 마케도니아 강국으로 이끌다

고대 그리스 북쪽 변방에 위치했던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들로부터 가장 가난하고, 교양 없는 미개한 야만인이라는 뜻을 가진 ‘바르바로이(Barbaroi)’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선대 왕이 일곱 명이 암살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에 왕 필립포스 2세(Philip II, BC 382년~BC 336년)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군사 개혁, 그리스 정복, 코린토스 동맹 결성 등을 통해 약소국이었던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세계의 최강국으로 성장시킨 명장이었다. 필립포스 2세는 젊은 시절, 경쟁자들에 의해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에 볼모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 최고의 전략가였던 에파미논다스를 만나 군사, 외교, 정치 등을 배우며 새로운 지도자로 변모했다. 특히 그는 테베에서 고대 그리스 중무장 보병의 밀집 대형의 전술인 ‘팔랑크스(Phalanx)’를 숙련했다. 이후 필립포스 2세는 전통적인 그리스 팔랑크스에서 사용하는 약 3m 길이의 창을 대신하여, 6m가 넘는 장창 ‘사리사(Sarissa)’를 사용하는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로 발전시켰다. 나아가 이 전술을 기병 및 경장 보병과 유기적으로 연계한 ‘망치와 모루’ 전술로 개량하여 동방 원정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는 기반을 마련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태생 전설, 제우스 아들로 인식시켜 주다

필립포스 2세는 BC 359년에 왕위에 올라 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고 불안했던 마케도니아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하나씩 복속시키며 그리스 대부분을 마케도니아 지배하에 두었다. 이러한 시기에 이웃 나라 에페이로스의 공주였던 올림피아스가 왕비로 있었다. 그녀는 뱀을 숭배하는 디오니소스신 종교에 심취해 있었으며, BC 356년 7월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Pella)에서 왕자를 출산하게 된다, 이때 태어난 왕자가 바로 알렉산드로스 3세이다. 이 왕자의 출생에 있어서 진짜 아버지에 대해 몇 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올림피아스가 결혼식 전날 밤 천둥과 함께 번개가 자신의 배로 떨어져 불길이 치솟더니 전 세계가 그 불로 인해 휩싸이다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 태몽이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의해 임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로 인해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그의 아들에게 너는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인식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일생 자신의 아버지는 필립포스 2세가 아니라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고 확신하며 성장했다.
또한, 필립포스 2세는 그의 아내 올림피아스가 침실에서 디오니소스 신 숭배로 인해 뱀과 함께 지내는 것을 목격하고, 제우스 신이 뱀으로 변신해 아내와 함께 지낸다고 생각하여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유로 필립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벌어진 틈은 훗날 왕가에서 빚어진 비극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필립포스 2세,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심을 느끼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청소년 시절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상인이 마케도니아에 부케팔로스라 하는 명마를 팔려고 찾아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길들이기에 무척 어려워했다고 한다. 필립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에서 부케팔로스를 몰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나름대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그때 말을 유심히 관찰하던 알렉산드로스 3세가 말이 날뛰는 원인이 그 말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말에 올라타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왕은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아들에게 부케팔로스를 사 주었다.
필립포스 2세는 그의 아들을 보고 감격하고 놀라워하며 “너는 새로운 나라를 찾아야겠다. 마케도니아는 너에게는 너무 좁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이 있었던 날 밤에 알렉산드로스 3세는 어머니 올림피아스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한 말은 칭찬이 아니다. 너를 다른 나라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너에게까지 질투심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라는 경계심을 일으키는 말을 했다. 역사적인 다양한 기록에 의하면 실제로 필립포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뛰어남에 경쟁심과 질투심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마도 이야기들의 사유는 이전 왕들이 대부분 암살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필립포스 2세는 아들을 향한 사랑과 후계자 계승에는 적극적이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다.

필립포스 2세는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보고 후계자 교육을 위해 아주 특별한 일을 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3세가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과 철학을 가르칠 스승으로 당대 최고 철학자이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모셔 왔다. 필립포스 2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모셔 오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다. 자신이 그리스 도시국가 정복 시 파괴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게이라(Stagira)를 재건해 주고 노예로 팔려 가거나 흩어졌던 시민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내걸어 아리스토텔레스 마음을 되돌려 초빙했다. 그리고 수도 펠라에서 약 30km 떨어진 한적한 산골 마을 미에자(Mieza)의 님프 신전에 왕실 전용 교육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필립포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일대일 교육보다는 마케도니아 귀족 자제들을 함께 미에자로 보내 평생 동지와 더불어 또래 집단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때 동문생 중 헤파이스티온, 프톨레마이오스, 카산드로스 등은 훗날 알렉산드로스 원정의 핵심적인 장군이자 참모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정치학, 의학, 과학, 윤리학, 문학, 수사학(Rhetoric) 등의 당시 고대 철학에 포함된 모든 분야의 학문을 3년 동안 교육했다. 여기서 수사학(Rhetoric)은 정치가로서 백성들과 논리적으로 토론하고 설득하는 연설, 즉 언변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특히 문학 작품 중 호메로스의 서사시, 트로이 전쟁의 10년 중 마지막 50일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일리아스(Iliad)》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존경하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책을 필사하여 선물로 전해 준 것이라 매일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킬레우스를 인생의 롤 모델로 삼고. 이 책이야말로 최고의 전술책이라고 극찬했었다고 한다. 훗날 동방 원정 중에도 《일리아스》 책을 품에 안고 다닐 정도로 애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복지에 헬레니즘 문화, 즉 종교 건축을 융화시키는 데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donald25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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