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5월 16일 (일) 

> 학술 > 철학 >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대이동
기사공유 작성일 : 21-03-15 21:3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서른셋. 성경권위(sola scriptura) 추락의 18~19세기 유럽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서유럽 사회는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정치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을 포함한 지식과 사상 분야에도 과거 세력과 신흥 세력의 쟁투가 더욱 격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큰 변화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확립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권위가 바닥부터 그 권위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16~17세기에 성경권위를 앞서서 붕괴시키려고 했던 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사주를 받은 인문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18~19세기에는 계몽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가 성경권위뿐 아니라 기독교 자체를 붕괴시켜야 할 구체제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으로 몰아갔다. 아래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잠시 따라가 보면서 그때 유럽이 포기한 성경권위가 어떻게 19세기 말 조선으로 건너와 전승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새겨보고자 한다.
18세기 성경권위 도전은 먼저 계몽주의(啓蒙主義, the Enlightenment)에 의해 일어난다.  성경이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통과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절대권위의 지식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성경에 대한 회의주의와 하나님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성경권위 부정론자이며 회의주의의 대가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계시종교는 불필요하며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도덕성에 바탕을 둔다는 주장으로 성경진리를 공격했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기독교에 대한 반동은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가리지 않고 서유럽 사상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프랑스에는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톨릭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반(反)가톨릭운동을 주도했던 얀센주의(Jansénisme) 운동가들, 법률가들, 가톨릭의 결혼 금지에 반발하는 배우들, 프리메이슨 단원들, 탄압받던 개신교들 등 모두 가톨릭교회에 대한 증오와 나아가 성경권위에 대한 회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인 반성경적 사상가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였다. 볼테르는 평생 반가톨릭운동가로 살았으며 종교는 결국 폭도를 만들어낸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볼테르는 성경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쓴 문서 13%가 성경 인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세상의 구주가 아니라 ‘교수형 받는 자’로 조롱했다. 성경지식을 아는 것과 성경권위를 확신하는 것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반면 루소는 기독교 진리를 자연종교의 범주 속에 넣고자 했다. 그는 예술과 과학이 인간의 참된 자유를 망각하게 할 뿐  아니라 타락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기독교의 원죄를 부정했으며 사랑의 힘으로 역사의 ‘황금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루소는 다섯 자녀들을 모두 고아원에 위탁하여 가정의 본래적 행복을 저버리고 데이비드 흄을 만나러 영국으로 가버린다.(113)

계몽주의의 완성은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현재 칼리닌그라드 소재) 교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주도했다. 그는 계몽주의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함으로부터 탈출”(114)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초월성에 대해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앙의 원천은 신적 계시도 아니며 성경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도덕적 양심’을 통해 일어난다고 보았다. 칸트는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를 부정하고 인간 내면의 양심이 토대가 되는 ‘도덕 왕국’을 세우고자 했다. 이러한 칸트의 계몽주의는 당시 정치 권력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왜냐하면 칸트의 철학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교회와 세상의 통치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교황이나 교황주의자들의 주장이 허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몽주의로 인해 18세기 말엽 서유럽 “가톨릭교회는 (……) 사분오열되는 위기를 맞게 된다.”(119) 이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건이 바로 ‘프랑스대혁명’ 사건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은 1789년부터 1815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가 몰락할 때까지 프랑스 역사이자 서유럽 민족주의 운동의 동력이 된 사건이다. 혁명 세력이 세운 권력기구인 시민의회는 프랑스 가톨릭 세력을 우선 무력화했다. 교회의 토지를 모두 몰수했으며 주교도 투표로 선출하고자 했다. 종교인들은 모두 시민법을 따른다는 서약을 받았으며 1792년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일으켰을 때는 국왕과 왕비를 포함한 정치와 종교의 적대 세력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가톨릭 전통의 모든 절기 행사를 폐지했으며 종교 건물 폐쇄는 물론이고 교회에 대한 폭력과 노골적인 신성모독을 일삼았다. 이 시민의회 세력은 기독교 자체를 “신세계 건설의 대적”(78)으로 규정했으며 이는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폭력으로 시민의회가 점점 신뢰를 잃어갈 때 혁명군의 한 장교는 국민의 신망을 얻었다.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기민한 정치를 구사했으며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리고 종교의 중요성을 어떻게 이용해야 종교 세력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그 방도도 잘 알고 있었다. 1804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 즉위식을 교황이 집전하게 한 역사는 그가 얼마나 가톨릭 세력을 적절하게 이용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는 가톨릭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자기 권위를 확립하는 데 사용했지만, 목적을 달성한 후 권력의 일인자는 자신임을 보여주고자 당시 교황이었던 피우스 7세를 4년 동안 투옥해 버린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19세기 초 유럽 기독교 상황에 대해 맥클로흐는 이렇게 평가한다. “지난 1,000년 간 유지되어 온 기독교의 정치권력이 무너져버린 것이다.”(129) 그리고 나폴레옹 몰락 후 100여 년 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은 서유럽에서 ‘기독교 국가’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게 해 버렸다. 이후 기독교는 한 나라를 통일시키는 통치원리로 작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민족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국가 권력을 키워나갔다. 국가에는 중앙집권적 정부가 수립되었고 언어도 통일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당시 국가들이 추구했던 정치적 이념이 바로 ‘민족주의’(nationalism)였다. 이때 발흥한 민족주의는 “정서적으로 종교를 대치하는 것”(131)이었다. 유럽을 단일 국가로 묶었던 기독교 체제가 몰락한 후 국가 수립의 토대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민족 개념을 특정한 민족에게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 권력에게 억압당하는 모든 자들을 박애 정신으로 묶으며 세계적 ‘형제애’를 내세운 운동이 일어났다. 바로 ‘사회주의’(socialism)였다. 이들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평등하며 서로서로 형제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초기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형제애 운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한 것으로 선전했다. 기독교도 민족도 아닌 인류의 형제애를 통해 계급 타파 운동이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주의’라는 싹을 틔우고 있었다.


<206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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