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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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07-23 19:3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계시의 현실성과 가능성: 이해가 된 성육신
우리는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권 시작에서 “현실성(Wirklichkeit)”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성은 신의 현실화, 신이 작용함(Wirken)이 작용 중에 있음(am Werke sein)이라고 할 수 있다.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은 하나님의 행동(God's Being in Act/Gottes Sein im Akt)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나사렛 예수”의 현실성이 “예수 그리스도”로 평가한 것 같다. 그러한 구도는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objecktive Wirklichkeit Offenbarung)”이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구도를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인간 예수 안에 신적 아들의 실현을 성육신으로 이해하려는 구도이다. 이러한 구도를 칼 라아너(Karl Rahner, 1904-1984)가 성육신 이해를 신 존재 통보(Die Selbst-Mitteilung Gottes, Gottes Selbst-Mitteilung, God's Self-Communication)라는 구도로 확장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철원 박사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기독론(상승기독론, Aufstiegschristologie, from below to above christology)을 명확하게 거부했다. 인간 예수에서 시작하는 기독론은 위로부터 아래로 기독론(하강기독론, Abstiegschristologie, from above to below christology)과 전혀 일치할 수 없는 구도를 갖는다. 빌립보서 2장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신 하나님(Kenosis)에 대해서 계시하고 있다.

켈리(Kelly)에 의하면 communicatio idioma-tum, 속성교류(the communication of idioms)는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310-390)에서 시작되었고, 451년 칼게돈 공의회에서 명확하게 거부되었다(in duabus naturis 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liter agnoscendum/to be acknowledged in two natures, inconfusedly, unchangeably, indivisibly, inseparably, 451년). 362년 아폴리나리우스주의(Apollinarianism, 속성교류)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죄되었고,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의 견해가, 그리고 451년 칼케톤 공의회에서 유티케스의 견해가, 553년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단성론(單性論, Monophysitism)이, 그리고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는 단의론(單意論, Monothelitism)이 정죄되었다. 단성론은 하나(monos)의 본성(phisis)을, 단의론은 한 본성에 한 의지를 주장한 반(反) 칼케돈주의자들이다. 정통신학은 속성교류를 엄격하게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신과 인간의 혼재(confuse)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사람은 피조물로 존재하는 것이 지극히 정당하다. 그럼에도 신과 인간은 교통(communion)을 한다.
바르트는 속성교류를 넘어서, 계시의 현실성(Wirklichkeit)과 가능성(Möglichkeit)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칼 라아너는 하나님의 자기통보(Die Selbst-Mitteilung Gottes) 구조로 제시했다. 성육신을 “계시의 현실성과 가능성”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통보”라고 하는 구도는 정통 신학의 성육신 이해와 전혀 다른 구도이다.
바르트는 계시의 가능성(Möglichkeit)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실성에서 연결했다(GG., 52). 바르트는 5가지로 정리했다. 번역을 따라서 제시한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으로부터, 하나님이 다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자유로우시다는 것, 즉 하나님이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 곁에서, 우리의 우주 안에서, 우리들이 만나는 현실성들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이시라는 방식으로서 계시가 그분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읽게 된다(GG., 52).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으로부터 다음 사실을 읽는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혹은 그분의 아들이 인간이 되는 방식으로써 우리에게 자유로우시며, 그런 방식으로써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GG., 55).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으로부터 다음을 읽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혹은 말씀이 우리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알려져 있는 형태를, 곧 우리에게 다른 어떤 형태에 대한 유비를 통하여 인식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심으로써,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그리고 그러한 형태를 취하시는 방식으로써 우리에게 자유로우시다(GG., 58).

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으로부터 다음을 읽는다: 계시가 하나님의 편으로부터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음의 방식으로, 즉: 그의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또 육신이 되어 지속적으로 존재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들에 대하여 자유로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 안에 계신 것과 동일하신, 참되고 영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GG., 60-61).

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으로부터 마지막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음을 읽는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혹은 말씀이 인간이 되시는 방식 안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분은 어떤 다른 자연적 존재가 되시지 않았다. 그분은 우리 자신의 존재인 바, 바로 그것이 되었다(GG., 64).

이러한 문장을 다시 마지막에 요약했는데, 1.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는 구분되는 현실성과 동일하게 되시는 낮추심 안에서,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혹은 말씀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우주적 현실성에 속하신다는 점에서, 4.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5. 저 인간 존재 안에서,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존재 안에서 발견하였다. 우리는 오직 계시의 현실성으로부터 엿보여지는 그것의 가능성이다(GG., 70).

바르트가 마지막에 제시한 안셀름의 문장,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crede, ut intelligas)”에서, 바르트의 계시 혹은 성육신은 “이해가 가능한 구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해가 가능한 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통 기독교의 성육신은 하나님(Logos asarkos)의 성육신(Logos ensarkos)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고백”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이메일 : ktyhbg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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