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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2-05-09 21:33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령,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6. Die Freiheit des Menschen für Gott(KD I/2., 222, GG., 260, CD., 203)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유”(신준호)이다. 첫째 “성령,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Der Heilige Geist die Subjektive Wirklichkeit der Offenbarung, GG., 260)으로 진행한다.

바르트는 Heiligen Geistes, Gottes Heiliger Geist, Heilige Geist로 사용하는데, 번역에서는 성령(the Holy Spirit)으로 번역한다.

바르트에게 꾸준하게 드러나는 어휘는 ‘현실성(Wirklichkeit, reality)’이다. 계시와 현실성은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 Realität, 실재성(현실성)은 인식된 res(존재자, 사물)에서 독립되어 외부에 있는 어떤 성격 혹은 성질이다. 칸트는 공간을 경험적 실재성(Realität)과 초월적 관념성(Idealität)으로 규정했다. 우리는 꾸준하게 Wirklichkeit(현실성)에 대해서 정립하고 있다. 신(감춰진 신. Deus absconditus)의 활동(wirken)이 드러나는 것(계시된 신, Deus revelatus)이 현실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객관적(Objektive)과 주관적(Subjektive)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제시했었다. 구원은 객관적 예수 그리스도, 주관적 성령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르트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개혁파에서 이해하며 설명하는 구도이다. 이것의 전형은 헬베티카 보고서(The Helvetic Consensus Formula, 1675년)에서 나타나 있다. 1675년 문서는 신앙고백서(Confession)로 평가하기는 적절하지 못하고, 위탁을 받아 조사한 뒤에 보고한 공식 문서로 평가할 수 있겠다. 스위스 개혁교회에서 조사한 대상은 아미랄디즘(Amyraldism) 혹은 소뮈르 학파(the School of Saumur)이다. 작성자는 하이데거(J. Heidegger, 1633-1698, 취리히), 튜레틴(Turretin, 제네바), 게넬러(Geneler, 바젤) 등이다. 아미랄디즘은 도르트 교령(TULIP)에서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를 거부하고(the four-points (TUIP)) 보편속죄를 주장한 것(universalism)으로 평가하여 배격했다.

우리는 구원을 객관적, 주관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사변적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구원을 합리적으로 논리로 체계화하는 것은 복음 증진에 유익하지 않음이 교회 역사에서 드러났다. 구원하는 복음은 합리가 아닌 복음을 전파하는 열정이고 정진이다. 18세기 유럽의 낭만주의가 교회 신학에도 유입되어 합리적 체계를 구축하여 복음을 증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구원을 객관적, 주관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17세기부터 등장한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은 객관적 말씀(기록된 성경)과 주관적 경험으로 구도화시켰다. 구원을 객관과 주관으로 나누면서, 객관에 대한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칼 바르트는 객관을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상태를 규정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구원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바르트도 개혁파 진영의 학자이기 때문에 개혁파가 수행한 사색 패턴에 현대철학의 개념들을 융합시키는 전개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리를 둘(존재와 현실, 어휘와 개념)의 융합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철학에서 규정하는 진리 개념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우리는 바르트를 이해하는 기본 개념들을 복습하고 있다. 바르트에게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은 “계시(Offenbarung)”이다. 우리는 바르트의 계시 이해는 정통신학의 계시이해와 같지 않음을 제언한다. 게르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1862-1949)는 성경을 “특별계시의 역사”로 규정하였는데, 특별계시를 성경 안으로 규범화시킨 것이다. 이 이해는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에게서도 명료하게 나타난다. 게르하르트 마이어(Gerhard Maier, 1937-)에게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칼 바르트의 계시 이해는 전통적인 계시 이해와 전혀 다르다. 바르트에게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구분이 전혀 없다. 한국 교회는 바르트의 계시 이해에 대해서 성경 무오성, 성경의 절대권위에 근거해서 배격했다(박형룡 박사). 박 박사는 바르트의 계시 이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로 변호하며 배격했고, 한국 교회는 박 박사의 주장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톰 라이트, 새관점학파의 신학이 범람하면서 성경의 권위는 아디아포라의 수준으로 전락하며 자유로운 하나님(바르트의 구도)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엄격한 성경무오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박 박사가 비평한 바르트의 계시 이해를 계시발생주의(될 수 있다, become)로 분류했다. 그리고 바르트의 계시 이해는 더 위험한 사상이 있는데 계시 발생이 성경이 아닌 러시아 관현악단이나 죽은 개에서도 발생될 수 있다고 제언한 것이다. 또 다른 계시 이해는 계시계속주의이다. 이것은 워필드 박사로 규범화된 은사중지론(Cessationism)과 대조되는 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이다. 목사, 장로, 집사는 교회를 섬기는 은사이다. 그런데 왜 은사중지론이라고 할까? 그것은 목사의 권위가 종속적이라는 것이며 절대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사지속론은 은사자에게 특별계시 시대처럼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 신사도주의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칼 바르트도 그러한 체계로 계시계속주의이다. 셋째 바르트의 계시 이해는 계시일원주의이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 I/2는 ‘계시’에 대해서 논하는데, 그 안에 삼일성 신(Gottes Dreieinigkeit, 삼중일신), 성육신, 성령의 기름부음을 제시한다. 그 모든 것이 계시 안에 있기 때문에 계시일원주의이다. 개혁신학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기를 말씀하시는 것이 계시, 자기계시(self-revelation of God)이다. 절대자의 자기계시가 없다면 피조물은 절대자를 알 수 없다(finitum non possit capere infinitum). 그러나 칼 바르트는 계시가 임의적으로 발생하는 곳에서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계시 안에 있는 계시일원주의이다.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계시중심주의이다.

바르트는 성령을 구속자라고 규정한다. 『교회교의학』, I/2. § 16에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제시할 것으로 예측한다. 바르트는 “성령의 부어짐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강조하는 사역자들 중에서 기름 부음의 주체를 성령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도 바르트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부으신다(참고 요한일서). 바르트는 계시가 발생하는 곳에서 성령의 부어짐이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 사건이 구속의 사건이라고 말할 것으로 예측한다. 구속을 자유로 분류한다면, 계시는 곧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구도가 된다. 성령의 부어짐과 인간의 자유가 함께 등장한 이유일 것이다. “죄사함에 근거한 자유”와 “계시 발생에 의한 자유”로 대조시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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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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