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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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2-06-20 22:3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영혼
영혼불멸설은 잘 알려져 있다. 왜 영혼불멸론(論)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하나의 가설로 남아 있을까? 여러 방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성경적인 존재론으로 증명하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이것은 성령론과 예수의 영(靈) 등과 직결되어 있다. 예수의 영과 육에 대한 논란은 예수의 초림 이후로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논란은 기독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예수의 영과 육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자리에 올 수도 있다. 또한 예수의 영과 육의 문제는 단편적인 이것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적인 주제들인 성경관과 신관 그리고 역사관 등과 매우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는 간단명료화를 위해서 구약성경에서의 영혼과 신약성경에서의 영혼으로 분석을 시도한다. 구약성경에서의 영혼은 모두 사람의 영혼이고, 신약성경에서의 영혼에는 예수의 영혼이 핵심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 사람의 영혼

구약성경에서의 영혼은 사사기에 처음으로 1회가 나오고, 욥기에 6회가 나오고 있다. 3분의 2 곧 4회는 욥이 고백하고 있다. 시편은 성경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시편은 구약성경의 3분을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편에 나오는 영혼만을 분석해도 그 본질을 볼 수 있다. 이 영의 근본인 성령은 성경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성령”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만 나온다. 성령을 의미하는 것은 창세기부터 말라기서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 있다. 창세기의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에서 “하나님의 영”은 성령이다. 스가랴서에서 잘 알려진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에서 “나의 영”도 성령이다. 말라기서의 마지막 4장에서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에도 성령의 역사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의 잉태부터 성령으로 이루어짐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있어서 근본이며 핵심인 성령과 구분되며 동시에 예수의 영혼과 구별된다. 시편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표현들이 아주 많다. 인간은 영과 함께 육신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이론은 간단하고 단순하나, 실제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확인하고 확증하여 믿음의 정도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각도나 관점을 강조하면서, 여러 모양이나 방법에서 비교적 쉬운 하나의 길이 있을 것이다. 영과 육이 어떤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를 지니고 있나? 그 여러 모양이나 방법에서, 우선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고 찾는다면, 몇 가지가 쉽게 나올 것이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의 실체와 육신과의 관계성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영혼이다. 자기 영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중생(second birth)이 아니겠는가?


2) 예수의 영혼

예수의 영은 여호와 하나님 아들의 영이며 성결한 영이다. 이것은 복음에 있어서도 핵심이다. 여호와의 언약에 있어서 본질적인 중심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영혼”을 의미하는 표현은 4복음서에서 모두 3회이다. 마가복음을 제외하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 각각 1회씩 나오고 있다. 이 점에 근본적인 답변을 주는 것이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이다. 마지막 아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살려 주는 영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인간의 영을 살리는 유일무이한 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죽음으로 낮아지시어 옥(獄)에 있는 영들에게도 알리셨다. 그 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다. 예수의 영인 성령이 인간에게 있다면, 그 사람은 육신을 지닌 영적인 공간인 셈이다. 부활과 중생 등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하다. 다시 사망이 없는 것은 확실한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원한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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