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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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2-08-10 20:00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참 교회에 대해서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인(Christen, Ch‐ristian)을 규정한다. 바르트의 글이나 모든 사상가의 글을 읽을 때에 필요한 것은 자기 규정이다. 자기 규정이 없을 때에는 사상가가 주장하는 규정에 끌려들어 갈 수 있다. 바르트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많다. 바르트가 규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결단이나 술어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수준의 이해를 죄와 반역과 이단으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자기 규정을 선언하면서 자기 규정과 반대되는 진영에 대해서 이단적(häretische Kirche, heretical church)이라는 규정까지 난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서, 참 교회(wahre Kirche)에 대해서 제시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Jesus Christus her existiert)으로 규정했다(GG., 273, KD., 234). 바르트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실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Und immer sofern sie von Jesus Christus her existiert). 브로밀리는 it exists in dependence on Jesus Christ로 번역해서, 예수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번역했다. 신준호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실존”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현대철학에서 존재 규정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 의해서 새롭게 규정되었다. Ex‐istenz,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신의 존재 이해와 더불어 언제나 존재를 이해하는 실존(Existenz)을 본질로 하는 현존재(Dasein)로 규정했다(Dasein with an essence of existence(Existenz))”(김민정, “하이데거의 세계 이해”,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3).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현존재(Dasein)를 이와 대립하는 본질(Sosein)로부터 쟁취함으로써, 본질(Essenz)의 억압적 구조로부터 자신의 실존(Existenz)을 해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창조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도 현존재가 세상에 떨어졌다, 현존재가 세상 안으로 던져졌다(Geworfenheit)로 표현했다(H. G. 퓔만, <교의학>, 257-258). 현대철학에서 존재는 Sosein에서 Dasein이 되는 구조이고, 그것을 예수는 성공적으로 수행한 존재(existiert)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해소되는 구도로 세운 것이 칼 바르트이다. 칼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객관성을 부여한 자기 독단을 수행했고, 그 독단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이단적 교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르트가 규정하는 교회 개념이 성령 부분에서 전개된다. 그리스도의 실존이 실현되는 공간을 교회로 본 것이다.

“1. 교회는 육신이 되신 말씀으로부터 존재한다(1. Sie ist von dem Worte her, das Fleisch geworden”, KD., 234, GG., 273, CD., 214). 바르트가 규정한 교회의 시작은 “말씀이 육신이 됨”에 있다. 바르트는 성령을 말하면서도, 교회의 시작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의 시작을 어디로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교회의 시작을 사도행전 2장으로 세운다. 그리고 바르트는 Extra ecclesiam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명제를 긍정하고 있는데, 바르트가 규정한 교회는 앞에서 말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이 있는, 신(神)의 자녀의 삶(Leben der Kinder Gottes)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개혁교회의 교회는 복음이 합당하게 선포되며 성례가 합당하게 집례가 되는 장소이다. 바르트는 하나님 자녀의 삶이 존재하는 곳을 교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르트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규범, “그리스도의 몸”을 제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연결하며, 실존으로 연결한다(GG., 274).

“2.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며, 그렇게 존재한다(2. Aber dieses Leben der Kinder Gottes ist und bleibt ein Leben um Christi willen”, KD., 236, GG., 275). 바르트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분리를 거부하면서, 삶을 강조한다. 그것을 교회의 현실성으로,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으로 규정한다(die Wirklichkeit der Kirche, die subjektive Wirklichkeit der Offenbarung). 그리고 다시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반복한다. 바르트는 교회의 주체를 그리스도라고 강조하며, 그의 말씀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교회의 시작을 “말씀이 육신이 됨”에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3.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육신이 되신 말씀에 의존함으로써, 그것은 공동체적 삶이 된다(3. Indem nun das Leben der Kinder Gottes ein Hangen an dem fleischgewordenen Wort ist, ist es ein gemeinsames Leben”. KD., 237, GG., 276). “fleischgewordenen Wort(육신이 된 말씀)”은 § 15.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에서 성육신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현실성으로 보는 육화는 전통적 성육신, 즉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심과 다른 것으로 제시했다. 바르트는 말씀이 육신이 됨과 공동체적 삶으로 연결시킨다. 전통적인 성육신은 속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연결한다. 삶을 강조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으로 집중한다.
바르트는 교회의 통일성을 한 분 그리스도에 근거한다고 제시했다(Die Einheit der Kirche aber gr&#252;ndet in dem einen Christus, GG., 277). 바르트는 교회를 주관적 현실성(die Kirche, ist die subjektive Wirklichkeit)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바르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반복한다. 그런데 바르트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 The Article by which the Church stands or falls)”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스도를 반복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적 사유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는 설교자의 복음 선포와 깊이 관계되어 있다(참고 계 2-3장). 선포된 복음을 듣고 지킴으로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된다(계 1:3).

“4. 하나님의 자녀의 삶 그리고 교회, 즉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은 신적이고 인간적이며 영원하고 시간적이며, 그리고 또한 보이지 않는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4. Das Leben der Kinder Gottes und also die Kirche, die subjektive Wirklichkeit der Offenbarung ist g&#246;ttlich und menschlich, ewig und zeitlich und also unsichtbar und sichtbar”. KD., 239, GG., 279).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도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반복한다.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은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 대하여, 시간적, 만남과 결단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의 교회는 규범적인 시간과 공간이 아닌, 사건, 임의적 사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말하며, 공동체이지만 단독자로도 가능하다. 바르트가 계시 경험(주관적 현실성)을 한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은, 슐라이어마허가 절대의존감정에 의한 공통 감정으로 공동체를 말한 것과 유사하다. 교회를 교리적 일치에 의한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통일성을 추구한다. 그때 경험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려고 시도하지만,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을 자의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온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롬 10:17-18). 바르트는 규범이 없는 삶에서 주관적 현실성의 발생을 추진하지만, 교회는 주께서 세우신 사역자에서 선포된 복음에 근거한다.

바르트는 이 부분을 요약하면서 정리한다(GG., 281). 바르트는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을 제시하면서, 교회의 현실성으로 등치시키고 있다. 바르트는 역사적 현실성에 대해서 “사람들에 의해서 보여지고, 경험되고, 사고되고, 그리고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공동체성으로 연결한다. 그러나 계시는 인간의 감각이나 지각에 의존하지 않는다. 개혁교회는 성령과 함께(cum verbo)로 내적 교사(inward teacher)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참고로 퀘이커(Quakers) 창시자,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는 그리스도를 내적 교사(Christ the Inward Teacher)로 묘사했다.

참 교회는 주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복음이 합당하게 선포되는 곳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참 교회를 그리스도의 실존 안에 있는 사람의 공동체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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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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