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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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9-02 10:0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 건축과 기독교 건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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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22–23 개역성경)

고대 그리스인, 신은 선·악 문제가 아닌 자연과
운명을 지배하는 존재로 인식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에 새겨진 조각상과 회화 작품을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고대 동양의 예술세계보다 서양 예술세계에서 유난히 인간과 신들의 누드(nude)를 표현한 작품들이 유물로 현저(顯著)하게 많이 남아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리스인의 인간 중심적 미학과 철학을 기초한, 즉 신적 속성과 인간적 속성이 결합된 형상 ‘신인합형(神人合形)’ 또는 신들이 인간과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고 보는 관념 ‘신인동형(神人同形)’ 사상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주제와 서사(敍事, Narrative)는 대부분 그리스 신화와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잠시 그들의 작품 세계에서 살펴볼 것은 그리스 신화 속에 신들의 성적 일탈(逸脫), 패륜적 행태, 잔혹성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보편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관(神觀)과 윤리와 도덕적 관념에서 비추어 봤을 때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그들의 작품 세계에 표출하여 전승되어 오고 있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신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숭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 시대 문화와 함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神)을 상상(想像)해서 신화 속에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신을 인간 욕망과 비교하여 동일 내지는 과장, 확대 포장하여 묘사했기 때문에 성적 일탈, 근친상간, 상상을 초월한 극도로 잔인한 폭력성 등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숭배했던 신들의 대표적인 제우스(Zeus)는 올림포스 최고신이지만 가장 많은 스캔들(scandal)을 신화 속에 그려 넣었다.
이런 그리스 신화 속에 표출된 내용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성적인 일탈을 넘어 인간의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욕구와 정치적인 권력투쟁을 신격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작품에 그리스 신들을 인간보다 크게 확대 포장하였고,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약점, 불완전한 인간적 욕망, 질투, 권력의 남용 등 인간의 본질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의 선(善)과 거리가 먼, 그들의 신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운명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의 토대는 결과적으로 그리스 역사 속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정치적인 기득권자들이 이러한 허구(虛構)적인 신화를 통해 신전 중심으로 도시국가들의 결속을 강조하는 동시에 헬라 공동체 의식을 고양(高揚)시키는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 중 하나인 극장(劇場)이 세워지다

다시 그리스 고전기(Classical period 기원전 480년~323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대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시민들에게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도시의 높은 언덕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 있는 신전(神殿)으로 한정해서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곳을 더 주목해 보자면, 그것은 그리스 도시국가 곳곳에 건설된 독창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극장(劇場)이다. 고대 그리스는 정치와 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있었기에 도시국가(폴리스: polis)에 세워지는 건축물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종교성을 띠기 때문에 극장 역시 그 부류에 속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또한 종교 축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그것은 시초부터 종교적 의식 즉 제례 의식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緣由)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아테네 사람들이 과거로부터 전승된 생활상을 보고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천오백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그리스 극장은 오늘날 현대 극장 건축물에 영향을 끼쳤다. 초기에는 정치·상업·종교·사교 등으로 시민들이 쉽게 모일 수 있었던 그리스인들의 일상생활 중심지인 낮은 평지 아고라(Agora)에 건축했다. 처음에는 건축 재질을 목조로 세웠으나. 기원전 5세기 초에 객석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 수많은 사람이 부상하고 사망자도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 아크로폴리스 밑에 경사지고 오목한 지형을 깎아서 다듬어 주재료를 석재로 사용하여 무대와 객석 구조를 원형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부터 간이 극장이 아닌 상설 극장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세계 최초의 극장이라고 알려진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Theatre of Dionysus)이다. 이 극장은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는 제전(祭典)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당과 함께 축제의 주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때 행해지는 연극 역시 이 신에게 바치는 제의(祭儀)적 행사의 일부였다. 신화 속의 신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포도주, 포도 재배, 광란, 풍요, 극(연극), 예술의 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Bacchus)로 불렸다.
이 극장의 구조는 크게 네 가지로 스케네(Skēnē), 프로스케니언(Proskenion), 오르케스트라(Orchestra), 테아트론(Theatron)으로 구분된다. 스케네는 무대 뒤편에 설치된 건물 또는 구조물로서 배우가 의상, 가면 등을 갈아입고 착용하는 탈의실 역할을 했으며, 이후 무대배경 역할을 겸하게 됐다. 스케네(Skēnē)는 오늘날 장면(Scene)이라는 어원이다. 프로스케니언(Proskenion)은 스케네 앞쪽에 배우들의 연기 공간을 말하며 요즘 사용하는 무대(proscenium)라는 용어와 연관이 있다. 오르케스트라(Orchestra, 관현악단의 어원)는 극장 중앙의 원형 또는 반원형의 공간으로 코러스(합창단)가 노래하고 춤을 추었던 극장의 핵심적인 장소로 신을 위한 제의(祭儀)적 성격이 강했던 곳이다. 테아트론(Theatron, 극장의 어원)은 돌로 만든 계단식 관람석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서 언덕 경사를 이용해 음향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고전기 당시 아테네 시민의 성인 남자 중심 인구가 대략 삼만 명 정도였는데 약 일만 칠천 명 정도가 입장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극장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웅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극장에서 종교 축제, 신을 기리는 동시에
또 다른 이면의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스 고전기 극장은 당시의 문화, 정치, 종교가 융합된 대표적 공적인 공간이었다. 또한, 건축의 기술과 사회적 기능을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그리스인들의 삶에 있어서 핵심적인 의미와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이러한 장소에서 신을 기리는 종교 축제는 단순한 신앙 행위가 아닌, 폴리스 전체의 공동체적 결속을 다지고자 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그리고 종교 축제 기간에는 풍자, 해학, 사회적 문제 비판 등을 다룬 희극(Comedy, Κωμῳδία)과 인간의 운명, 비극적 상황, 도덕적·철학적 갈등을 다룬 비극(Tragedy, Τραγῳδία) 경연 등이 벌어졌다. 이는 신에게 바치는 헌정(獻呈) 행위였고 동시에 각각의 폴리스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공적 의식이었다. 이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은 명예와 물질은 물론 아테네 사회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림과 동시에, 이곳에서 연극과 연관된 사회적 지위가 보장됐다.
아테네에서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통해 민주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폴리스(도시국가) 정체성을 더욱더 강화하기도 했다. 따라서 극장은 종교적·공적 공간이자 시민 교육과 도덕적 교훈을 위한 장으로도 그 기능을 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 자체가 그들이 맹신하는 신에 대한 종교 행위에 사로잡혀 살았다. 이러한 극장에서 종교 축제는 신을 기리는 동시에 또 다른 이면의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donald25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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