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5-11-11 10:5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절대 권위와 정경 확정의 섭리 과정 (Ⅳ)


12. 하등비평(본문비평)과 사본학의 관계

본문비평(하등비평, lower criticism)의 목적은 성경 본문을 가능한 한 원문(autograph)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데 있다. 필사에 의해 전해진 다양한 사본들 사이의 차이를 비교·분석하여 성경의 원저자(하나님)가 실제로 기록하게 하려 한 원래의 본문 그래서 기자가 처음에 기록했던 원문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본문비평은 사본학(manuscript studies)과 서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다. 사본학은 본문 비평의 기초가 되는 사본들(manuscripts)을 연구하는 분야이며 사본의 역사·유형·계통·언어적 특징·필사자의 습관 등을 다룬다. 이러한 사본학은 본문비평학에 ‘자료(material)’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본문비평가는 어떤 구절의 여러 사본 변이(變異)들을 분석하기 위해 사본학자가 분류·기록해 놓은 사본 목록과 특성을 참고해야 한다. 이로써 본문비평은 사본학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judgment)’을 내린다.

사본학에서는 먼저 사본을 계통적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형, 비잔틴형, 서방형 등으로 분류하여 이를 근거로 어떤 계통의 본문이 더 원본에 가까운가를 평가한다. 사본학이 필사자 습관(유사 단어 혼동, 탈락, 중복)을 연구한다면, 본문비평은 이를 사용해 구절의 변이(變異)가 필사자의 실수인지 의도적 수정인지를 해석하게 된다. 사본학은 오래된 필사본을 연구할 때 필체의 스타일과 변화를 연구하여 사본의 제작 연대와 지역을 추정하는데, 사본 시대 확정은 본문비평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책의 제작과 보급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다. 바로 코덱스(Codex)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책을 사용하는 방식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책의 형태 중 하나인 코덱스는 파피루스 두루마리(scroll)가 일반적이던 시대에 등장하였으며, 이어 양피지, 파피루스 또는 종이를 접어 묶어놓은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코덱스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먼저 휴대와 보관의 용이성이 크다. 두루마리에 비해 부피가 작고 보관하기 쉬웠다. 또한 페이지 넘김의 편리함도 커서 원하는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여러 개의 텍스트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코덱스 제작 연대는 사본 제작 시대를 알려준다.

이 경우 연대가 더 이를수록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중치로 평가한다. ‘연대가 더 이르다’는 말은 그 사본이 원문(original text)에 시간적으로 더 가깝다는 뜻이다. 가령, A 사본이 기원후 150년경(원본을 50년경 기록했을 것으로 볼 때, 그로부터 100여 년 경과한 후)이고 B 사본이 기원후 900년경(원본을 50년경 기록했을 것으로 볼 때, 850여 년 후)일 경우 A 사본이 필사 과정에서 오류가 누적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기 때문에 본문 원형을 더 잘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가령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A.D. 325-350)과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A.D. 450)이 서로 다른 구절을 기록하고 있을 때, 바티칸이 더 이른 사본이므로 원본 선택의 가중치를 더 높이 평가 받는다.

하지만 ‘오래되었다=무조건 원본에 가깝다’는 뜻은 아니다. 사본의 계열(family)이나 지역적 특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본의 연대 외에도 그 사본이 속한 계열(family, text-type) 즉 어떤 지역적 전통을 따라 필사되었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본의 연대가 빠르다고 해서 반드시 원본을 잘 보존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사본이 단순히 시간적으로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어떤 ‘본문 전통(line of transmission)’을 따랐는가가 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A 사본이 A.D. 200년경에 만들어졌지만 이미 여러 지역적 수정이 반영된 잘못된 전통에서 나왔을 수 있고, B 사본은 A.D. 400년에 만들어졌더라도 정확한 전승을 따라 복사되었다면, 오히려 B 사본이 원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본학에서는 시간적 근접성보다 ‘전승의 질(quality of transmission)’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본의 ‘계열(family)’ 혹은 ‘유형(text-type)’이란 말에는, 단지 시간의 앞섬보다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본문 전통의 가지(branch)가 다르게 발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계열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알렉산드리아 계열(Alexandrian text-type)이 있다. 주로 이집트와 알렉산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며 가장 고대적이고 신중한 필사 전통을 보존하며 간결하고 정확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대표 사본으로는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과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 있다. 그리고 서방 계열(Western text-type)이 있다. 이는 로마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하며, 자유로운 번역과 의역 그래서 추가 삽입된 내용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문체상 확장적이다. 다시 말해 사본이나 번역본이 원문보다 길고 부연 설명이 많으며 문장을 풀어 쓰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베자 사본(Codex Bezae)이 대표적이다. 또한 비잔틴 계열(Byzantine text-type)이 있다. 이는 소아시아, 그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문법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다듬어진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복사된 사본이 아니라 문법적으로 더 정확하고 매끄럽다는 점이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교리적 일관성을 갖도록 의도적으로 정제한 본문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읽기에는 자연스럽고 신학적으로 안정적일지 모르지만 본문 비평적 관점에서는 원형보다는 ‘해석된 형태’라는 점이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다. 다수 사본이 이 계열에 속하며 특히 후기 사본인 대부분의 중세 사본들(Textus Receptus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오래되었다=무조건 원본에 가깝다’는 판단은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사본의 제작 연대뿐 아니라 본문 전통(계열, 지역적 특성)도 반드시 고려하여 연대적 근접성과 동시에 전승의 신뢰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처럼 사본학은 본문비평의 기초이고, 본문비평은 사본학의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다. 그래서 사본학이 없다면 본문비평은 비교할 자료가 없으며 본문비평이 없다면 사본학 연구는 단순한 고문서학에 머물 뿐이다. 그래서 성경권위 확정과 관련해서 본문비평과 사본학은 ‘자료와 판단의 상호작용’의 관계가 되며 함께 작동해야만 비로소 원문 복원의 신뢰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다. 이 모든 사본학과 본문비평의 다양한 역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과 주권적 섭리 하에 진행되고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성경의 절대 권위와 정경 확정의 섭리 과정 (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