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5-12-02 12: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삶을 병들게 하는 변증법적 역사주의를 해체하라!


니체는 모든 지식을 단지 분석하고 해체하려는 근대인을 ‘역사화한다(Historisieren)’고 비판한다. 이들은 모든 삶의 가치를 역사적 산물로 환원하고 상대화한다. 도덕과 예술, 종교와 문화 일체를 시대적 산물로만 취급하여 현재와 미래의 삶을 점점 마비시키고 삶의 창조력을 둔화시킨다. 니체의 말이다. “현대인은 모든 기초를 미친 듯이 무분별하게 부수고 찢고, 이 기초를 항상 흐르고 흩어지는 생성으로 해체하며, 생성된 모든 것을 지치지도 않고 풀어헤치고 역사화한다.”(364-65) 이 인용은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한 니체의 근본 비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하에서 우리는 니체가 헤겔의 역사철학이 인간의 삶과 생존을 어떻게 왜곡하고 마비시키고 병들게 하는지에 대한 비판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를 절대화하고 모든 것을 역사로 환원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니체의 비판을 통해 숙고하면서 성경 진리에 바탕을 둔 역사관 정립은 우리 시대에 왜 중요한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헤겔의 역사철학을 다르게 말하면 ‘역사철학적 절대주의’ 혹은 ‘역사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철학적 절대주의(Absolute Historicism)란 인류의 모든 가치와 진리, 도덕과 예술 나아가 종교와 문화를 오로지 역사적 과정으로 규정하여 정당화하려는 철학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 그 자체가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고 역사를 지배하는 초월적 원리나 절대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절대주의는 모든 것은 역사적 결과물이기 때문에 역사 해석도 역사를 통해서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진리 판단이나 가치들 혹은 삶의 의미는 이성이 지배하는 절대정신(Geist) 혹은 역사적 과정의 단계(stage)에 철저하게 종속당하며 모든 사실과 진리 판단의 궁극적 기준은 ‘역사적 맥락’이다.
이러한 역사 절대주의는 역사 환원주의(Historical Reductionism) 태도와 연관된다. 역사 환원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실존의 생생한 의지와 활동력을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든 진리 판단이나 가치 창조 행위 나아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적 창조 역량이나 그 산물들을 ‘역사적 배경’으로 환원해 버리기 때문이다. 도덕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산물이 되고, 종교란 자신이 속한 시대를 심리적으로 만들어낸 구조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도 그 시대 역사가 지배하는 환경의 결과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니며 철학이란 시대 정신에 기능적으로 부합하는 부산물이다. 이렇게 모든 가치를 역사적 조건의 틀로 규정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당화를 위한 가치와 미래 창조를 기획하는 모든 의지를 좌절시키고 만다. 니체는 바로 이러한 역사 환원주의에 대해 ‘역사화(Historisieren)’의 극단적 형태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현재의 삶의 의지와 활력을 왜곡하는 모든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니체는 초기철학부터 그 전복(顚覆)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니체의 전체 철학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철학의 동기가 된다.

니체는 모든 실존이 속한 당대의 문화를 병들게 하는 너무도 사악한 대적인 역사주의는 현재의 가치창조 활동을 박물관 유물로 박제해 버린다고 한다. 실존을 가능하게 최소한의 조건과 실존의 자기 역량을 이미 자신이 파악한 과거 유산으로 취급한다. 삶의 동력을 역사화하면서 삶의 의지를 왜곡하고 마비시켜 창조력을 소멸하는 이러한 역사 환원주의는 마치 마이다스의 손처럼 삶의 모든 가치를 조사하고 설명하면 할수록 삶을 꽃피웠던 생명력을 말소시켜 버린다. 그래서 니체는 역사 환원주의에 몰입하는 당대의 지식인 그룹들, 역사비평가나 역사 해석자 혹은 역사 관찰자들에 대해 그들은 삶을 유익하게 하는 창조적 주체가 결코 될 수 없다고 혹평한다. 이처럼 인간을 기계적 결과물로 만들어 버리는 역사 환원주의는 자제력을 잃고 함부로 설치는 자와 같이 그 속에는 생기를 잃은 무기력하면서도 반(反)생명적인 인간 군상으로 취급한다. 당대의 철학적으로 가장 심각한 질병이었던 역사 환원주의는 생존을 위한 가치 창조를 무력화시키면서 유럽 전역을 감염시킨 페스트와 같은 심각한 질병이었다. 인간 실존을 역사와 환경 그리고 구조의 부산물로 규정하는 역사 환원주의는 단순한 학문적 오류로 끝나지 않고 삶 자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화적 질병이다.
이와 같이 니체는 역사철학적 절대주의와 역사 환원주의를 주도하는 헤겔주의자들의 사유전략인 ‘절대정신(Geist)의 변증법적 자기 전개’에 대해 맹렬한 폭격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삶의 가치를 이미 지나간 정신의 단계로 상대화시켜 변증법 속에 매장시키는 태도는 ‘지금-여기-이러한 방식’의 실존 고유의 창조적 의지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니체는 서두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렇게 지적한다. ‘현대인은 모든 기초를 미친 듯이 무분별하게 부수고 찢고, 이 기초를 항상 흐르고 흩어지는 생성으로 해체하며, 생성된 모든 것을 지치지도 않고 풀어헤치고 역사화한다.’ 모든 기초를 부수고 생성으로 해체한다는 말은 헤겔주의자들이 영원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모든 가치나 도덕을 역사적 생성의 산물로 환원시킨다는 뜻이다. 또한 ‘생성된 모든 것을 풀어헤치고 역사화한다’는 말은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에서는 어떤 가치도 현재 지금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가치는 단지 주어진 역사적 환경과 정위(定位)에 지배당하면서 변증법 수행의 기능적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존적 가치의 생명력과 호소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만큼 그 패배와 손실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삶을 살아갈수록 점점 더 명을 단축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헤겔주의자들은 모든 가치를 변증법적 사유전략을 통해 이미 정해진 대로 전개되는 단계 속에 박제시켜 버리기 때문에 니체는 가치 창조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스스로 ‘다이너마이트’가 되어 가치 창조의 공간을 마련해주려는 것이다. 삶을 역사라는 개념 안에 종속시키는 왜곡된 사유 구조를 전복하려는 니체는 역사적 산물로 죽어가는 모든 가치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고자 한다. 또한 절대정신의 전개에 단지 수단과 단계로 전락하는 삶의 에너지가 바로 역사적 동력임을 제시하는 사유의 혁명을 시도한다. 나아가 니체는 헤겔주의자류의 근대인은 결코 삶의 창조를 위한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전 생애에 걸쳐 고발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의 모든 기반을 산산조각 내면서 삶의 의지를 갉아먹는 질병이 되어버린 ‘역사화’의 습성은 모든 가치의 기원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삶에 유익한 동력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에 부여 가능한 모든 의미를 해체하려는 ‘사악함’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악의 확산 속에서 절대성 추구에 대한 최소한의 열망도 사라지고 모든 가치들은 관념적 조각으로 분해 당한다. 역사적 분석이라고 명명하지만 무한 반복의 해체만 거듭할 뿐이다. 이를 니체는 ‘근대성의 정신병’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니체는 이 역사화(Historisieren) 문제를 돌파하고자 한다. 니체의 말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철학적 패러디 작가의 화려한 마술 거울 속에서 보면서 즐거워할 것이다.”(365)

<283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일흔둘. 보에티우스의 영원: 무한과 순간의 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