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나님의 전능하심 두 가지 호칭
엘 샤다이와 엘 깁보르가 가리키는 전능의 두 얼굴
우리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는 고백을 자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전능을 한 단어로만 말하지 않는다. 구약에서 특별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하는 두 호칭이 있다. 하나는 널리 알려진 엘 샤다이(El Shaddai),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메시아 예언의 심장부에 놓인 엘 깁보르(El Gibbor)이다.
엘 샤다이는 창세기 족장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울리는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확증하실 때 이렇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b)
이 이름은 흔히 전능하신 하나님(God Almighty)으로 번역되지만, 그 전능은 단지 힘이 세다는 뜻만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여 언약을 이루시는 능력, 그리고 부족함을 채워 충분케 하시는 능력의 뉘앙스를 갖는다.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 끊어진 가능성 위에 “내가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엘 샤다이이시다(창 17:6–8, 35:11).
반면 엘 깁보르에서 핵심 단어 깁보르(gibbor)는 용사, 강한 자, 전쟁의 영웅을 뜻한다. 이 표현이 정확히 엘 깁보르 형태로 나타나는 곳은 두 군데이다. 메시아에게 주어진 칭호로 “전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은 이사야 9장 6절에,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은 이사야 10장 21절에 나온다.
엘 깁보르는 성탄 본문으로 유명한 이사야 9장 6절 속에 숨어 있지만, 많은 성도들은 이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 정도로만 지나치곤 한다. 그러나 이 칭호는 메시아에 대한 놀라운 신학적 선언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한 아기에게 엘 깁보르라는 호칭은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이사야의 대담한 고백이다. 연약해 보이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지만, 그분은 실제로 하나님 자신이 악을 상대하시는 전사로 임하신다는 뜻이다. 즉, 엘 깁보르는 메시아의 사역인 죄, 사망, 사탄의 통치를 깨뜨리러 오시는 하나님의 용사이시다. 그리고 이 전사적 성격은 성경 전체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여호와는 전쟁에 능하신(깁보르) 분으로 노래된다. 엘 깁보르는 바로 그 여호와의 능하심이 메시아 안에서 구체화되는 이름이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8)
이사야 9장 6절에서 한 아기의 칭호 중 하나가 엘 깁보르인데, 바로 다음 장면의 흐름을 지나 이사야 10장 21절에서 다시 동일한 표현이 등장한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1)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 신학 장치이다. 이사야 9장 6절에서 엘 깁보르는 메시아의 이름으로 주어지지만, 이사야 10장 21절에서 엘 깁보르는 남은 자가 “돌아갈” 하나님으로 선포된다. 이 구조는 메시아의 신적 정체성과 회개의 방향성을 하나로 묶는다. 남은 자의 회복은 단순한 민족 재건이 아니라, 엘 깁보르께로 돌아오는 신앙적 귀환이며, 이 연결은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신성과도 자연스럽게 만난다. 구원은 어떤 인간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이루신다는 복음의 골격이 여기서 선명해진다.
한편,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은 “사자”를 소개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어린양”을 보여준다. “유다 지파의 사자… 이기셨으니”(계 5:5),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 5:6). 세상은 전사가 칼로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전사는 피로 이기신다. 메시아는 전사이지만, 그 전쟁의 무기는 십자가이다.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이 어떻게 이기는지를 이렇게 말한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계 12:11)
전사 메시아의 승리는 폭력의 승리가 아니라, 대속과 희생의 승리이다. 이것이 엘 깁보르의 가장 깊은 신비이다. 용사 하나님께서는 우리 방식으로 싸우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악을 무너뜨리신다. 악의 뿌리는 죄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롬 6:23), 그분은 칼로 적을 베기 전에 자신을 제물로 드려 죄의 권세를 무장해제하신다. 그래서 어린양은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하다. 죽임당하셨으나 다시 살아 서 계신 그분이야말로, 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승리의 전사이시다. 마침내 계시록은 그 어린양이 왕으로 다스리심을 선포한다. “어린양은 그들의 주가 되시고…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계 17:14 참고)
엘 깁보르, 전사 메시아, 어린양. 이 세 표현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복음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말이, 단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로 악을 끝장내는 거룩한 승리자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엘 샤다이를 믿는 신앙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끊어진 가능성 위에도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엘 깁보르를 믿는 신앙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제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악과 죄의 권세를 주께서 꺾으십니다.”
그리고 이 두 고백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성탄절에 오신 그분은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는 샤다이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죄와 죽음을 이기신 깁보르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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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여인갑 장로 (지구촌교회 / (주) 시스코프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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