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 건축과 기독교 건축 (4)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22–23 개역성경)
교회당 건축물, 일반적인 종교 건축물과 같은
우상 숭배의 도구로 오용될 수도
대개 사람들은 ‘종교(宗敎, religion)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일반적인 학자들은 종교를 동·서양에 따라 구분하며 그들마다 인식하는 종교관에 따라 다양하게 서술하면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보편적인 사람에게 물어보면, 인간들이 절대적 신 또는 그 어떤 가치로 말미암아 마음의 평안을 삼는다는 것으로 답한다. 여기서 주체는 명목상은 특정한 대상이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가 주체가 되어 있다. 내가 찾아가고, 내가 믿고, 내가 의지하면서 평안을 얻는 것이 대부분 사람은 종교 생활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의 가치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대상에 걸맞은 우상을 만들어 섬긴다. 이러한 형태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계승되어 오고 있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다수의 기독인은 여타 종교인들처럼 심적 위안을 삼는 특정 대상물인 우상을 절대 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생활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우상으로 섬기는 모순이 다수가 존재하고 있다. 그 우상 중 십자가와 각종 조각상 등이 될 수도 있다. 기독인들이 교회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건물의 제일 높은 종탑과 본당 앞쪽 한가운데 십자가와 조각상, 대형 그림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것들을 교회당마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심지어 빛 또는 조명으로 십자가와 조각상의 신비감을 도출하려고 노력하는 특정 종파와 목회자도 있다. 항상 신도들은 그 앞에서 엄숙해진다. 어떤 신도들은 십자가를 자기 집 안방에 신주(神主) 모시듯이 걸어 놓은 것도 볼 수 있다. 특정인들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형태가 무속적인 종교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문을 던지고 싶다. 그것도 로마 제국의 권위와 처벌의 상징이었으며, 반란자에게 최종적이고 가장 굴욕적인 형벌이었던 십자가 형틀 아래서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은 일반적인 종교 건축물과 같은 우상 숭배의 도구로 오용될 수도 있다. 성경적인 기독교 건축 관점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성취사적인 하나님의 계시 섭리의 한 방편인 구속 사건에 대한 의미에 마땅히 가치를 두어야 한다. 반면 사람들은 그 신비감에 도취되어 우상을 섬기는 누(累)를 범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십자가와 각종 조각상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향후 로마시대에 십자가 표징의 유래 등을 탐구하면서 그 출발점과 무엇이 옳고 그름을 알아보려고 한다. 그에 앞서 이번 호에도 지난번에 이어서 그리스인들의 종교심을 불러일으켰던 종교 건축물 신전과 그들의 역사와 그 이후 초기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는 로마 문명을 학습한 후에 이 글을 쓰게 된 최종 목적인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적인 관점에서 기독교 건축에 대한 진실에 다가서 보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중세 기독교와 함께 서구 발전의 기반
그리스는 서서히 아르카익 시대는 저물고,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절정을 이루었던 고전기(Classical Period 기원전 480~323년)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그리스 도시국가 중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 중심에 있다. 아테네는 정치, 문화, 예술 등 서구 문명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시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원리를 제도화한 도시국가 즉, ‘민주정(民主政, democracy)’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국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와 비교하면 시민권이 제한적이고 노예제도에 기반한 체제였다는 한계도 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중세 기독교와 함께 서구 발전의 기반이 된 가장 큰 요소이자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테네 도시국가 탄생은 그리스 전설에 나타나 있다. 아테네는 그리스 아티카 반도에 있으며, 이 왕국은 어느 때부터인가 대부분 소아시아 서쪽에 위치한 이오니안(Ionians)들의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전역에 이오니아 왕국이 세워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 왕국의 수호신이 되고자 하는 신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전쟁·지혜의 신 아테나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누구를 이 왕국의 수호신으로 세울 것인가에 대해 직접 시민들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이들의 공약은 다음과 같다. 포세이돈은 왕국에 호수를 선물하는 것이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선물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선물한 바닷물이 짠물이라 식수로는 사용이 불가하여 시민들은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 도시국가를 아테네라고 불렀다고 전해오고 있다. 아테네는 척박한 토질로 인해 기름진 곡식을 재배하기 어려웠다. 대신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를 심어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생산했고, 이를 다른 도시국가에 판매하여 곡식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아테네는 비옥한 땅을 가진 도시국가를 식민화하기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에게해와 소아시아, 흑해 연안,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 일부 지역까지 식민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리스는 이러한 도시국가들과의 해상 무역을 통해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주요 수출품으로 삼았으며, 이를 운송하기 위한 도자기 용기인 암포라(Amphora, ἀμφορεuc) 산업이 발달했다. 도자기 제조 기술의 발전은 이후 무기 대량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테네의 탄생 이야기는 전설이지만, 오늘날에도 아테네는 여전히 올리브유와 포도주로 유명하다.
이러한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역사를 혼합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역사적인 사실과의 연관성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의 전승에서는 신화(Mythos)를 포함하여 기록된 역사(Historia)가 뒤섞여 전해지면서 역사적 사실과 상상적 요소가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고대 그리스 서적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증명하듯이 영어의 ‘history(역사)’와 ‘story(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어 ‘ἱστορiα (Historia: 역사)’라는 어원에서 나왔다. 중세 영어 시기까지는 두 단어 모두 ‘이야기, 기록’을 의미했으나, 나중에 history는 ‘사실적 기록’, story는 ‘이야기(허구)’라는 의미로 분화됐다.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 시민들의 신앙심과 위상의 상징
그리고 정치적인 도구
그리스 고전기 종교 건축 중 고대 그리스 문명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Akropolis)에 위치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Αθηνe)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기원전 5세기(BC 447~432년)에 15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기원전 1100년경 미케네 문명을 침입한 도리아인의 건축 양식(도리스 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졌으며, 고대 그리스 건축과 조각 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신전은 최고급 대리석을 원형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 올린 거대한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기둥의 높이는 약 10미터에 달한다. 이 웅장한 규모만으로도 당시의 화려함과 뛰어난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신전 내부에는 높이 약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아테나 여신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아테네 시민들의 신앙심과 도시의 위상을 상징했다.
‘파르테논’은 ‘처녀의 집’ 또는 ‘순결한 여신의 집’을 의미하며, 이는 아테나가 순결과 지혜의 여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신전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인 아고라(Agora)에서 언제든지 시민들이 올려다볼 수 있도록 하늘과 가까운 높은 언덕 위에 세워졌다.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신을 의식했으며, 1년 내내 다양한 제례 의식과 축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신이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그리스 신전들 기둥 위에 삼각형 지붕 페디먼트(pediment), 띠 모양 프리즈(Frieze), 정사각형 판 메토프(Metope), 신전 내부 셀라(Cella)에는 신들과 영웅들의 탄생이나 전쟁 모습 등을 묘사한 조각상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조각상은 그리스인들이 신을 인간과 같은 형태로 묘사하는 ‘신인합형(神人合形, Anthropomorphism in form)’ 사상을 반영하며, 인체 비례와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이처럼 그리스 신전과 조각상은 당시 높은 문맹률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종교심을 일깨우는 일종의 도구로 기능을 했다. 더 나아가 정치인들은 이를 활용해 시민들의 시선을 종교로 돌림으로써 도시국가의 패권을 강화하고 시민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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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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