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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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4-11 21: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한국교회의 아버지 사무엘 모펫의 3가지 사랑 3가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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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모펫(Samuel Austin Moffett,1864-1939)은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왔지만,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교의 학장으로서 한국의 인재 양성에 힘쓰며, 한국의 근대 교육과 민족 교육에 기여한 교육자였다. 사무엘 모펫을 한국 이름으로 마포삼열(馬布三悅)이라고 하는데, ‘삼열’은 세 가지 ‘기쁨’이라는 뜻이다. 선교사와 교육자, 조선의 독립투사로 살았던 그의 삶은 한국 교회의 역사에 하나의 ‘기쁨’으로 기억될 것이다. 
모펫은 1864년 1월 25일 미국 인디애나(Indiana)주 메디슨(Madison)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하노버대학(Hanover College)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후 하나님의 소명을 확인하고 시카고의 맥코믹신학교(McComick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나는 인디애나 작은 도시에 있는 모펫의 생가를 방문하면서 내 머리에 남겨진 좋은 기억들이 아직도 기분을 좋게 한다. 그가 공부한 맥코믹신학교는 미국 보수주의 신학의 본산으로 보수적인 목사들을 양성하였고, 복음 선교의 열정에 불타는 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가도록 이끈 중추적 역할을 한 신학교였다. 1889년 4월 15일 마포삼열은 선교부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1890년 1월 20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는 언더우드(H. Underwood) 선교사 집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는데 서상륜이 한국어 교사였다.
마포삼열은 1890년 8월부터 1891년 가을 동안 3차례의 전도여행의 경험을 하면서 복음전파와 교회 설립에 전념하였다. 1893년 미국 북장로교회 한국 선교부는 드디어 평양에 선교지부 설립을 결의하고 마포삼열과 이길함(李吉咸, Graham Lee), 소안론(蘇安論, W. L. Swallen)을 평양에 파송하여 지부 건설을 하도록 위임하였다. 마포삼열은 평양을 중심으로 1893년에 장대현교회를 비롯하여 교회 개척과 선교에 열심을 다하였고,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의 학장으로 교육 사역에도 헌신하였다.
모펫은 한국교회의 19010년 에딘버러 선교 보고 대회에서, 당시 한국 교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0년 전 내가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 도시나 그 지방에는 그리스도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9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도시에서 15마일 반경 안에 50개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평안도 지역 전체에는 300개의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 서울에는 이제 15개의 교회가 있고, 송도(개성)에는 4개의 교회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땅 전체에는 2,500개 이상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고 수백 개의 마을의 주민이 주로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민의 1/5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평양과 같은 그런 도시에서의 생활은 기독교가 그 최대의 변수로 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선천은 주민의 1/3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모펫은 자신이 한국의 선교사로 와서 현장에서 목격한 한국 초대 교회의 놀라운 부흥을 감격스럽게 증언하였다. 이 부흥은 그냥 단순하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부흥하게 된 이유와 특징을 3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모펫은 한국 초대 교회의 부흥과 복음화의 가능성을 말하면서, 초대 한국 교회의 특징으로 성경을 사랑하는 교회, 자립하는 교회, 교육 사역을 하는 교회로 보고하고 있다.
나는 한국 교회의 아버지 사무엘 모펫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는 ‘三愛三悅’이라고 생각한다. 모펫에게 ‘삼애(三愛)’, 3가지 사랑은 하나님, 한국, 한국인이었다. ‘삼열(三悅)’, 3가지 기쁨은 선교사, 교육자 그리고 애국자로서 기쁨을 말한다. 모펫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교 보고를 다음과 같이 마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간을 내 달라고 구두로 그리고 서면으로 요청하면서 주어진 주제는 한 마디로 ‘한국에서 복음 전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한국 사람들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시고 한 교회를 불러내어 큰 영적 능력과 복음 전도를 향한 열정을 갖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보다 더 나은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사역이 보여 주는 하나의 아주 당당한 특징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주어진 그 자리, 그 최고의 자리, 아마 거의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자리였다.
선교사 모펫은 한국 교회의 아버지로서, 한국 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였으며, 동시에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교 그리고 숭의학교의 설립자와 학장으로 재임한 교육자였으며, 동시에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통치기에 민족 교육을 위해 투신한 한국 근대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숭실학교와 평양신학교를 비롯한 일제하 기독교 사립학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한 민족 학교로서 애국 계몽 운동의 중심적인 학교였다. 모펫이 설립하고 학장으로 재임한 평양신학교와 숭실학교는 한국 근대의 역사에서 독립운동의 중심적인 사립학교였다. 즉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평양신학교와 숭실학교는 민족 학교로서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 애족으로서 교육 기관이었다. 모펫의 선교 사역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본질과 방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21세기 교회가 추구하는 선교의 정책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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