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5-11-11 11:0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 주권성과 목회 원리 (3)


Ⅱ. 오직 성경권위에 호소하는 목회

앞서 살펴본 기고에서 우리는 여호와 존재 계시와 여호와 속성의 관계를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통해 살펴보았다. 여호와의 존재와 그의 절대주권성에 관해 성경 중심의 논의를 살펴보면서, 개혁파 신학의 전통이 성경에 근거한 여호와 계시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형식논리와 철학적 전제 그리고 도덕적 판단 중심으로 주권성에 대한 미흡하고 왜곡된 결과를 야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철학적 논의로 왜곡당한 근본적 이유는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근본 원리였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신적 권위를 확정하지 못한 데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타난 위대한 성경 자체의 논리를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본주의적 형식 논리와 철학이 지배하는 신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신 존재 증명은 성경에서 몇몇 구절을 철학적 논리로 편협한 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신 존재 증명이었으며, 신 존재의 증명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한 논의도 인간 중심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개혁파 신학이 남겨 놓은 과제를 앞서 박용기 목사가 주창한 성경의 신적 권위는 오직 ‘성경신학’을 통해서만 가능함으로 실제로 살펴보았던 것이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창세기 첫 장 첫 절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논리적 일관성에서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성경은 구조적으로 완벽한 통일성을 갖춘 절대진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 중심의 전통 개혁파 신학은 지금 목도하듯이 종말로 향하고 있다. 성경의 정확무오한 진리에 바탕을 둔 신학을 배우지 못한 목회자들은 목회 현장에서 성경에 근거한 목회와는 거리가 먼 인본주의 종교 생활을 부추기는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다. 필자가 35년 동안 세 차례 교회 분열을 경험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 자신부터 말로만 성경의 권위를 주장했지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은 매우 미흡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동일하게 인식한 교회 성도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주라도 성경권위에서 벗어난 교회 생활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성경권위를 확정하지 못하면 여호와의 이름도 여호와의 주권성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교회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우리 교회에서 성경권위에 호소하는 목회가 어떠한지 그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성경 계시의 논리적 통일성과 목회의 원리

신학은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하는 성경의 신적 권위 확증에 의해 가능한 학문이다. 본 연구는 학문의 최고 권위는 오직 성경 권위를 확정하는 데서 가능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이야말로 신적 권위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확정 짓고자 했던 것이다. 성경 권위는 문자로 기록된 모든 말씀에서 확증해야 한다.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신적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논리적 통일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래야 성경의 모든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피조만물에 대한 절대주권적 통치를 깨닫고 그를 경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차례 너무나 아팠던 교회 분열의 교훈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성경의 절대권위를 일치시키지 못한 점에 있었다. 그래서 현재 저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나아가 사회생활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절대주권적 통치를 먼저 고려하면서 늘 성경 권위에 호소하고 간구한다.

성경 권위에 호소하는 목회는 은혜로 시작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능력의 영광을 찬양하는 성도의 삶을 지향한다. 목회는 현상적으로 보면 목회자와 성도들의 ‘긴장’ 관계 속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계시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몰두하는 것은 목회를 인간 활동으로 전락시키는 심각한 범죄가 된다. 그 예를 필자는 저희 교회에서 겪은 세 차례 분열에서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분열을 거듭할 때마다 목회자를 비롯한 나와 생각이 다른 지체에 대한 실망은 정도를 넘어 증오하고 심판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절대주권성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말로만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라고 외친다고 신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개혁파 신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오직 성경으로만’을 주창했지만 결국 여호와 계시 중심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신학에 실패했듯이, 저희 교회 분열의 역사에서도 모두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구호에 그쳤다. 소수의 성도들이 남았을 때 함께 공감한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우리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공감이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고민하고 토론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하는 진리 중심의 교제가 없었던 것이다. 성경 자체의 권위가 아닌 목회자에게 의존하였기 때문에 목회자에 대한 절망도 컸던 것이다. 인간의 공감력에 호소한다면 결국 목회자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성경에 대한 무지에 대해 통탄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의 공감에서 함께 깨달은 사실이 있다. 성경권위라는 구호만 외쳤고 실제로 확인하려고 하지 않은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이며 그것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였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현재 저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호소하고 간구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이는 성도들의 관계에서도 어떤 성도 개인을 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교회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적 통치를 먼저 간구하게 한다. 박용기 목사가 주창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성경 권위 확정의 귀중한 안내서로 보는 궁극적 이유도 성경 지식의 축적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참 목자 되심을 선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기고를 통해 일부 전개했고 또한 저희 교회 성도들이 각각 몰두하는 성경공부에서 박용기 목사의 주석인 ‘성경강론전집’을 사용하는 이유는 개신교 성경주석의 역사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논리적 일관성을 확정한 유일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논리적 일관성은 성경 전체의 구조적 통일성에서 더 큰 열매를 맺게 하며 이는 성경 체계의 완벽성으로 안내한다. 나아가 성경 전체 주제의 단일성을 확정 짓고 동시에 ‘여호와의 존재와 속성의 계시’라는 의미의 단순성을 확증하도록 안내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여호와 주권성과 목회 원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