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6-02-11 08: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칼빈의 주권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성경의 권위는 성경의 절대진리성을 객관적으로 확정함으로써만 비로소 수립될 수 있으며, 이로써 성경만이 인간의 사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 확정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는 증거처럼, 말씀의 진정한 권위는 기록된 파편적 내용이 아니라, 창조부터 심판까지의 모든 사건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 그리고 그 영광의 속성을 일관되게 뒷받침하는 계시 체계일 때 확보된다. 특히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논함에 있어 창조주와 심판주로서 영원한 원형의 세계와 유한한 실체의 세계[박용기 『성경강론 1권』 (성남: 진리의말씀사 2018), 17 참조] 모두를 통치하시는 신적 ‘주권성’에 대한 이해는 신학의 핵심적 과제이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 신학계는 이러한 신본주의적 토대를 상실한 채, 성경을 각자의 철학적 전제나 세속적 가치관에 따라 파편화하여 이용하고 있다. 성경은 이러한 인본주의적 시도에 대해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1:20)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여기서 성경을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성경의 원저자인 성령의 감동과 의도를 무시한 채,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적 일관성과 구조적 통일성 없이 인간의 주관적 견해나 도덕적 판단, 혹은 역사 비평적 가설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사로운 해석은 성경을 신적 계시가 아닌 인간의 사상적 기록물로 전락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라는 호칭은 우주 만물에 대한 절대주권적 섭리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고유 성호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주권성’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 해석과 신학 정립의 본질임을 뜻한다. 따라서 성경 기록의 어떤 부분이나 신학 정립의 어떤 주제라도 반드시 신적 주권성 개념을 명확히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성경의 수많은 사건을 인용하고 방대한 주석적 지식을 나열할지라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라는 절대주권적 섭리 구조 안에서 논리적으로 해석되지 못한다면 이는 성경 권위 증명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날의 신학은 신본주의적 본질에서 벗어나 급격히 세속화하고 있으며, 성경을 활용한 지식을 전개할수록 오히려 성경의 본래 주어인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부터는 멀어지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올바른 성경 해석과 신학 정립은 인간의 사사로운 견해와 타락한 이성의 산물인 철학적 전제를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창세전 작정하신 뜻에 따라 만사를 섭리하시며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능력을 확증하는 성경 자증의 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오직 이러한 신본주의적 회복을 통해서만 성경은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는 절대진리로서 그 권위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기고는 개혁파 신학의 거대한 토대를 정립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기독교 강요』 1권 ‘신론’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성 개념을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적 관점에서 면밀히 재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신지식의 주체 설정 문제, 타락한 인간에게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열어둔 점, 그리고 인간의 죄의 책임 문제 등을 다룸에 있어 여호와의 절대주권성을 논리적으로 훼손하는 인본주의적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1. 하나님 지식의 주체에 대한 비평

개혁파 신학의 토대를 정립한 칼빈 신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주권성이 자리 잡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1권의 문을 열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 지식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인간 자신에 대한 지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지식과 정체성에 대해서도 정확한 규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의 관계에서 그 논리적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확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간 자신을 아는 지식의 관계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확정하지 못하고, 이러한 논리적 상관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임을 토로한다.[John Calvin, 『기독교 강요 上』, 김종흠,신윤복,이종성,한철하 공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1), 77-78 참조]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피조물인 인간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는 반드시 신지식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탐구와 인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모순에 직면한다.

여기서 심각한 인식론적 난제가 발생한다. 과연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스스로의 판단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문제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신지식을 추구하지만, 정작 그 신지식을 추구하는 주체인 인간에 대한 해명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인식의 결과 또한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을 알기 위해 신지식이 필요하고, 신지식을 얻기 위해 인간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는 ‘논리적 악순환(Vicious Circle)’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칼빈은 신론을 전개하면서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1536년 초판부터 1559년 최종판에 이르기까지 약 23년 동안 『기독교 강요』를 수정하고 보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지식과 인간 지식의 우선순위 문제를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최종판에서도 그는 두 지식의 관계 정립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린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 지식을 대전제로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그러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확립해 가는 주체를 ‘탐구하는 인간 자신’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지식 추구의 실질적 출발점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여호와의 주권적 계시보다 인간의 인식론적 노력이 앞서는 형국이 된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칼빈 신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진리 인식의 주관자’를 명확히 확정하지 못한 데 있다. 성경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1:20)라고 선언하며, 진리 인식의 주체가 인간의 사사로운 이성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칼빈이 신지식의 주체 문제에서 방황한 이유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이성이 지닌 무능함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고, 신지식의 형성 과정에 인간의 지적 역할을 일정 부분 개방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식의 주관자를 인간의 지적 능력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보내신 ‘보혜사 성령’으로 확정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는 말씀처럼, 성령의 주권적 조명 없이는 어떠한 신지식도 단순한 정보나 철학적 가설에 불과하다. 따라서 칼빈이 두 지식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신적 주권성을 인간의 인식 체계 안으로 끌어들인 인본주의적 잔재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지식의 대전제는 인간의 자기 이해가 아니라,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자기 계시여야만 하며, 인간은 오직 성령의 역사 속에서 그 계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확증하는 존재일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여호와 주권성과 목회 원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