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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1-11 19: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전택설과 칼빈주의 5대 교리 순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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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 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3 그[그리스도-필자 주] 안에서 (……)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3-4,5,7,13)

성부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 예정, 성자 하나님의 구속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印) 치심,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비로운 진리 곧 예정론의 근거가 된다. 창세전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선택하신 사건은 영원한 은혜에 기초한 언약에 바탕을 둔다.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일방적으로 확정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은혜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완성된다. 역사적 사건으로서 죄의 권세를 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전적으로 창세전 성부 하나님이 확정하신 예정의 은혜언약을 성취하신 사건이다. 성령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인(印)을 찍어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 믿게 하는 사역도 창세전 은혜언약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처럼 창세전에 이미 확정한 삼위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시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예정된 대로 완벽하게 성취된다. 타락 사건을 포함한 창조 세계에 벌어지는 어떠한 인간 불의(不義)와 불법(不法) 사건에서도 창세전에 확정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언약은 그 효력을 상실할 수 없다. 이것이 타락전 하나님의 선택을 강조하는 전택설(supralapsarianism)의 핵심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전적 은혜를 강조하는 전택설 중심의 예정론은 접근부터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삼위 하나님의 자기 백성 선택과 최종 구원의 완결은 인간의 평가나 선택의 차원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근본 사실을 가볍게 여기면 창세전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을 피조물의 시각에 억지로 맞추려는 오류를 범하고 끝없는 소모적 논쟁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그래서 예정론의 근거를 담고 있는 성경 본문을 대할 때 우리는 더욱 보혜사 성령의 주권과 은혜를 간구하는 태도와 심정(心情)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전택설의 중요함은 타락 전 하나님의 선택이며 동시에 전택설의 부담(?) 또한 선택 후 타락의 작정이다. 전택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인간의 타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 사건에 타락이 의존한다. 즉 창세전 은혜언약에 바탕을 둔 성육신 사건이 인간의 타락을 지배한다. 이에 대해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이 악의 창시자가 된다는 부담에 직면해 인간의 죄 책임을 개입시켜 ‘허용적 작용’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은 절대주권과 오직 은혜에 의한 선택과 유기의 창세전 이중 사건에서, 죄의 조성자 문제에 부담을 덜고자, 하나님의 절대 자유와 절대 주권성을 훼손시킨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인간 의지의 독립성을 범죄의 원인으로 삼으려는 이러한 주장은 이원론 간극의 골을 더욱 깊이 파게 할 뿐이며, 영존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상대화하고 인간화하는 문제를 초래한다.
개혁파 신학 전통에서 예정론을 삼위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계시 사건으로 보는 전택설 중심의 시각은 신학 정립의 주요한 기초다. 가령 ‘칼빈주의 5대 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에 대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는 이유도 이 교리가 전택설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전택설의 핵심을 모두 반영하지 못하는 근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칼빈주의 5대 교리 정립 배경을 통해 전택설을 반영할 수 없었던 요인을 살피고, 나아가 전택설에 근거할 때 이 5대 교리를 어떻게 배치하면 알미니우스주의와 후택설을 극복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구원론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각한 제임스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가 사망하자 그 추종자 알미니우스주의자들(Arminians)이 알미니우스 신학의 주요 요점을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1. 인간은 본성상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으며 독립된 자유 의지와 영적 선(善)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구원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만 조건적으로 선택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구속 사역이며 부분 타락한 인간이 각자 믿음을 결정한다. 4. 성령의 중생(重生) 사역은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의해 제한을 받거나 좌절당한다. 5. 구원받은 자도 구원에 대한 자기 책임을 스스로 보존하지 못하면 신적 은혜에서 탈락한다.
이러한 알미니우스주의에 대해 칼빈주의자들은 1618년 네덜란드 도르트(Dort)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칼빈주의 5대 요점(TULIP)을 공식화했다. 1. 전적 타락 혹은 전적 무능(Total Depravity or Total Inabil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 속죄 혹은 특별 구속(Limited Atonement or Particular Redemption) 4. 불가항력적 소명 혹은 은총(Irresistible Calling or Grace) 5. 성도의 견인(堅忍) (Perserverance of the Saints) 먼저 ‘전적 타락’ 교리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한 것은 인간 본성 자체의 부패이며 전인격적 타락으로 하나님을 알거나 구원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선택의 조건은 피조물인 인간에게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에 근거한다. 세 번째 ‘제한속죄’는 보편 구원론에 대한 반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 능력이나 효력으로 보면 전 우주적이지만 그 적용은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의 구속에만 적용된다. 그러므로 네 번째 ‘불가항력적 은총’은 당연한 귀결이 된다. 왜냐하면 구속의 주관(主管)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며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인간은 거절할 능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견인’이다. 인간의 공로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이 아니므로 인간의 행위로 인해 창세전 선택은 취소당할 수 없다.
이렇게 인간 공로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알미니우스주의에 맞서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구원받을 씨앗이 될 어떤 것도 인간 내면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구원에 관한 한 모든 선택의 주권과 은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전택설을 반영하기에 정립 배경부터 아쉬운 점이 있다. 먼저 알미니우스주의의 주장에 맞서서 항목별로 정립한 신조(信條)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한계다. 적극적 주장이 아니라 소극적 방어 이론이다. 그리고 5대 교리는 창조 세계의 인류 타락 사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의 창세전 예정 사역’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와 아쉬움이 있다.

알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 주장은 서로 교환할 수 없으며 상호보완주의로 나갈 수 없다. 한쪽이 진리면 다른 한쪽은 비진리다. 알미니우스주의를 수용하면 인간의 독립된 자유의지를 확보할지는 몰라도 창세전 삼위 하나님의 예정 사역 곧 은혜언약에 나타난 신적 주권성과 자비성은 사라진다. 은혜로 시작했으면 은혜로 종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이지, 은혜로 시작해서 인간의 자율적 의지로 끝맺는 것은 극심한 이원론의 혼동을 야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택설을 반영하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재정립해 보는 시도는 유의미하다고 본다. 칼빈주의 5대 교리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교리의 순서를 바꾸면서 앞서 소개한 에베소서 1장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창세전 예정 사역’을 무조건적 선택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무조건적 선택-전적 타락-제한 속죄-불가항력적 은총-성도의 견인’의 순서로 배열하면 전택설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단 표> 참조

전택설이 부담으로 여기는 하나님의 죄 조성자 문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성에서 인간 중심적 도덕적 관념을 얼마만큼 배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인간의 인식 태도나 노력으로 바뀔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한계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다만 분명하게 강조할 수 있다면, 전택설의 신학적 가치는 선택된 백성들의 교만을 경계하고 엄격하게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향할 수 있도록 무한한 신적 긍휼과 자비가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1-15)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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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택설(supralapsarianism)과 성경권위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