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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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12 19: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4)




 십여 년 전, 필자가 처음 교회학교 교사를 시작할 때였다. 성탄절을 맞아 어린 학생들이 교인들을 위해 재롱(?)을 마치고 나오니 한 어르신이 내게 다그치듯 물어왔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학생들이 어른들을 봐도 인사를 안 해!” 당황한 나를 대신해 필자보다 예의가 바랐던 학생들은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고 필자는 그 이후로 유교적 질서가 어떻게 기독교 안에서 극복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가 느꼈던 일방적인 ‘장유유서’의 권위로는 다음 세대에게 성경 말씀의 권위를 전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과연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가 다음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진리를 전하기 위해 필요한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아공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모임을 지켜보았고 지면을 통해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1) 남자 성도들의 새벽 모임
 (Men under Construction)
 금요일 새벽 5시 50분. 아직 깜깜한 어둠이 덮인 새벽이지만 하나둘씩 교회에 차량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매주 금요일 새벽, 교회에선 ‘Men under construction’이라는 이름으로 남자 성도들이 출근하기 전 모임을 갖는다. 갓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로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성경과 신앙적 주제들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필자도 한 달 전 처음으로 참석해 보았는데, 백발의 노신사가 직접 커피를 타 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최근 한 달간의 토론 주제는 ‘기도’였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변증가인 ‘팀 켈러’ 목사의 ‘기도’라는 책을 읽고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임은 생각보다 치열한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기도’에 대한 주제로 시작했지만, 토론은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질문에 따라 기도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로 옮겨가기도 한다. 기도와 실천의 문제, 일반계시를 통한 기도 문제, 인간의 타락한 본성 문제, 그리스도의 신인성 문제 등등. 필자는 이런 토론을 지켜보며 목회자가 없이 진행되는 모임이기에 결론이 산으로 가지 않겠냐는 걱정이 들곤 했다.
 필자가 처음 참석한 그 날도 그랬다.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시는 젊은 성도 한 분이 기도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교회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분의 열정적인 사역을 알고 있기에 대부분은 이에 동의하고 수긍했지만, 한편에서 다른 주장이 나왔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우리의 행위와 바로 매치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로 성경 구절을 근거로 삼아 주장을 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토론은 격렬해져만 갔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덧 마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필자에게 커피를 타 주었던 백발의 노신사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사실 두 주장은 모두 성경에 근거해서 합당한 주장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순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마음에 심어주시고 기도할 마음을 주신 후에 성령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의지까지 주셔서 기도한 바를 이루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자 격렬한 토론을 이어가던 두 그룹이 모두 동의를 하고 잠잠해졌다. 필자는 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토론 중에 분명 비슷한 의견이 나왔음에도 인정하지 못하던 이들이 이분의 정리를 듣고는 모두 만족스럽게 동의한 것이다. 어린 성도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신앙적 질문들을 하도록 유도하던 토론의 분위기도 놀라웠지만, 모두를 순복시키는 이분의 권위는 어디서 온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공회에서는 목회자들의 목회와 생활을 돌아보고 신학을 감시하는 일을 맡은 장로 직분(Warden)을 두고 있는데 이분이 바로 그 직분을 맡은 분이었다. 젊을 때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려 했지만 은사가 아니란 걸 깨닫고 사업을 하며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이지만 아직도 맡은 직분을 위해선 신학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며 당회원들이 모이면 신학 스터디를 인도한다고 하시는 모습에서 필자는 이 분이 간직한 지혜와 권위의 출처를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에 당회원들이 함께 읽고 있는 책은 웨인 그루뎀의 ‘꼭 알아야할 기독교 핵심 진리 20’ 이라고 한다 ^^;;)
2) 여자 성도들 모임
(Ladies' Bible & Cooking Morning)
매주 금요일 새벽 남자 성도들의 모임이 있다면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여자 성도들만의 독특한 모임도 있다. 직접 참석해 보고 자세히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여자 성도들의 모임이기에 참석한 자매에게 들은 후기만 짧게 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세대와의 유대와 교제를 통해 진리를 전승하고 어린 성도들을 보살피기 위해 권사님(이곳에 권사라는 직임은 없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다)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 모임은 분기마다 한 번씩 열린다. 연세가 있는 권사님들이 자기 집을 개방하여 교회의 모든 젊은 여자 성도들을 초청한다. 성도들이 모이면 음식 재료들을 준비하여 자기들만이 가진 특별한 음식 레시피를 가르쳐준 후 그룹을 나누어 같이 음식을 만들며 교제를 나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은 후엔, 모임을 주최한 분 중 한두 분이 자신의 오랜 신앙 여정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과, 직접 경험한 교회의 중요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여성으로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지혜 등을 나눈다고 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을 비유로 쓰면 적절할까. 자칫 구시대 할머니들의 잔소리로만 들릴 수 있는 신앙의 권고가 함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큰 언니의 사랑이 담긴 지혜로 변해간 것이다. 윗물에서 내려오는 넘치는 사랑을 통해 서로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신앙 선배를 통해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 권위를 더해 어린 자매를 자연스럽게 현숙한 신앙의 선배로 이끌어 가고 있던 것이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1~2)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입어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진리는 어떻게 전승이 되는가?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며 십자가로 향하셨던 성자 그리스도의 영광을 교회를 통해 어떻게 계승해 오셨는가? 이 영광은 주름진 손에 배인 성경책의 냄새가 이른 새벽 어린 성도를 위해 타는 커피의 향기 속에 진하게 어우러질 때, 한 많은 한평생의 삶 속에서 겪어온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어린 자매를 대접하기 위해 만드는 레시피 속에 첨가될 때. 오직 그때,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그리스도의 권위로 다음 세대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목요일 밤. 내일 새벽이 기다려진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빌레몬서 1:8~10)

변도근 (전 장안중앙교회 교회학교 교사/ 남아공 스텔렌보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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