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3-03-21 20: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一生如一日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는 잘 알려져 있다. 하루가 3년과 같으니, 매우 지루하거나 몹시 애태우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에 비추어 보면, 위 제목은 아주 쉽다. 바로 일생이 하루와 같음이다. 인간으로서 자기의 일생을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성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본 필자에게, 2023년 3월 초는 지난 50년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1973년 3월 초의 하루는 바로 영덕(盈德)의 강구(江口)로 이사 간 날이다. 이사 날은 바로 바다를 처음 보는 날이다. 그날은 50년이 지났지만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50년을 기념하여 며칠 전에 이사 갔던 날을 잡아 영덕을 다녀왔다. 이제 그 50년을 정리하지 못하면, 본 주제를 다루는 필자의 인생은 그야말로 무상(無常)이며 허무이다. 이 같은 절박한 심정이 아마 이 글을 적도록 또 정리하도록 떠밀고 있다. 시편(39편) 기자는 그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과 같음을 고백하였다. 이것에 대하여 인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모든 인생은 죽음에 종노릇 한다. 죽음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생이 하루와 같다는 것은 성경말씀이다. 인간의 말이 아니고 주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바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이다. 이 진리를 두 가지로 나누어 조금 더 세밀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一日如千年

위 문구는 우리말보다 먼저 번역된 중국어(漢文)이다. 바로 베드로후서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물론 “주께는”이다. 이 의미를 시편 90편에서는 “주의 목전”으로 표현하였다. 두 가지는 동일한 의미이다. 시편에는 단지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로만 되어 있다. 하루가 천 년과 같다는 표현은 없다. 베드로후서에서 먼저 하루가 천 년과 같음을 밝혔다. 그다음에 천 년이 하루와 같다고 말한다. 이 순서에도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루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은 바로 창세기에 근거하고 기초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6일 창조에서, 하루는 지금의 하루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일여천년(一日如千年)에서 이 하루는 창조 시의 하루와 더 밀접하기 때문이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에서 하루는 천 년과 같다는 의미에 더 밀착되어 있다. 시편 90편에서 인간의 연수를 칠십으로 못 박고 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연수를 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이 명령은 언약이며 작정이다. 인류의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여 있다. 인간 수명의 숫자가 70으로 된 것은 아마 인류의 평균수명에 근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건하면 팔십까지다. 팔십이나 백까지도 모두 일일여천년에 녹아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100년 후에 2000만 정도로 예측되고 있다. 이 모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섭리해 오셨고, 모든 인류를 날아가게 하신다.


2) 千年如一日

一日如千年千年如一日. 이 열 글자는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이 열 글자에 2000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3년 전에 인류는 밀레니엄을 맛보았다. 이 밀레니엄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과 관련되어, 시편은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그 가치를 부여하였다. 2000여 년 전에 오신 예수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그 증거들 중에 중요한 것은 지금도 그 주님을 기준으로 2023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90편에서의 천 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천년은 지나간 어제와 같다. 이 숫자의 전제로서 “주의 목전(주께는)”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2000년의 기간도 모두 주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인간 그 누구도 1초도 늦추거나 당길 수 없다. “지나간(pass) 어제”에서 참으로 신기한 것은 지나간 것에 있다. 지나간 것은 밤의 한순간이다. 아브라함은 예수보다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왔다. 다윗은 1000여 년이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할 때는 하루가 3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 점(點)과 같다. 50년이나 100년 그리고 1000년까지도 모두 하루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천년왕국도 주께는 하루와 같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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