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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4-26 21:52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소망 없는 사망의 몸
이 땅에 진정한 소망이 있을까? 꽤 무거운 질문이다. 자기 자신의 몸이 각자에게 가장 소중하다. 살아 있는 몸이니 입에 풀칠은 해야 한다고 속으로 누구나 외친다. 자기 몸에 대한 소망에 관한 질문은 누구나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누가 건강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몸의 외관은 대개 머리통과 몸통과 사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마다 이에 대한 가치설정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뇌와 이목구비 등을 갖추고 있는 머리통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또 어떤 사람들은 5장6부를 담고 있는 몸통을 가장 귀히 여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거동의 수단이기 때문에 팔다리를 더 중시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기 몸을 가장 귀하게 생각한다.
이처럼 귀한 몸에 진정한 소망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몸의 결국과 본질을 알지 못하여 속고 살다가 부닥치는 절망은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절망을 맞이하지 않고 진정한 소망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 육체의 본질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소망 있는 몸은 없을까? 이 긍정적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먼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근본과 본질 등을 몇 가지로 찾아 나열해 보고자 한다.
첫째, 사람(아담)으로부터 온 몸이다. 창조주가 원래 사람을 창조했을 때, 그 몸은 지금의 신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남자와 여자 둘이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생령이다. 지금의 몸은 뱀의 유혹을 받아 타락된 육체다. 곧 여호와의 영이 그 육체와 영원히 함께하지 않는다. 육체의 움직임이 보이니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實狀)은 죽은 몸이다. 죽은 몸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으면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은 때에 ‘살았다’와 ‘죽었다’를 속으로 반복하며 지낸다. 이러한 것은 인류가 모두 아담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둘째,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는 몸이다. 이 생로병사는 사람이 태어나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묘사한 말이다. 이 생로병사는 삶의 여정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큰 관심사이다. 이 인생여정의 논리적인 체계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기 위해서 우선 이 말의 현상을 묘사한다. 생(生)은 생로병사의 시작점으로 사람이 땅에 직립보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잘 걷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땅으로 점점 기울어진다. 땅의 수평과 함께 90도로 꼿꼿하게 섰던 사람이 거의 45도 방향으로 시간 따라서 기울어진다. 이것이 바로 로(老)이다. 기울어져서 결국 땅바닥에 누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이 시간이 바로 병(病)들어 눕는 때다. 이때를 누가 피하여 갈 수 있는가? 피하여 간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사(死)는 땅 위로 걷던 사람이 반대의 땅속으로 완전히 180도로 변화된 것이다. 현상적으로 강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셋째, 세상 근심을 지닌 몸이다. 사람은 육신을 지니고 태어날 때부터 땅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걱정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 육체가 사망과 동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육체는 본능적인 욕심 자체를 지니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떨쳐버리고 해탈(解脫)하여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기도 한다. 이것은 생로병사의 대안으로 제시되어 있는 윤회(輪廻)와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중생(重生)한 몸을 지닌 자는 성령의 소욕이 강해지는 만큼, 육체의 소욕은 줄어들게 된다. 
넷째, 썩어 없어질 몸이다. 이 육체는 흙으로 말미암았으니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 근본과 결국을 확증하지 못하면 수많은 근심에 휩싸여 지낼 수밖에 없다.
다섯째, 이 사망의 몸이 둘째 사망인 것은 아니다. 둘째 사망은 영혼이 영원히 멸망 받는 불못(lake of fire)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사망이 있는 것처럼, 둘째 생명도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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